▲ 엄태준 국민참여당 이천여주지역위원장

영화 ‘도가니’를 관람한 사람들은 당시 청각장애인들을 성폭행했던 교장, 행정실장, 교사 등 범죄인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당 형사재판에 관여했던 판사, 검사, 변호사에 대해서도 맹비난을 퍼붓고 있습니다.

이에 성난 민심에 겁을 먹은 경찰과 검찰은 언론을 통해 ‘재수사’를 하겠다고 발표를 하고, 정부에서는 갑자기(?) 문제가 된 ‘광주인화학교’에 대한 학교재단법인설립허가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하였으며, 심지어 대통령도 직접 영화 ‘도가니’를 관람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당시 실제 형사재판에 관여했던 판사와 변호사가 각자 당시 자신들의 입장과 생각들을 설명하는 해명들을 내놓기까지 하였는데, 그러한 해명에 대해 국민들은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비판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논쟁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물론 실제 (성)폭력의 정도는 영화 ‘도가니’에서 보다도 몇 배 더 심했다고 하며, 그 내용이 우리 국민들의 상식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기 때문에 온 국민들이 그로 인한 충격의 ‘도가니’에 오랫 동안 빠져있는 것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단순히 성폭행 당사자와 당시 재산에 관여했던 검사, 판사, 변호사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 그 당시 피해당사자인 청각장애인들의 고통과 상황에 대해 함께 이해하고, 더 나아가 왜 그와 같은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서 다시는 제2의 ‘광주인화학교’가 나타나지 않도록 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충격적인 범죄(이를테면, 묻지마식 대량 살인 등)가 발생하여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충격에 빠지는 경험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충격적인 범죄행위에 대해 정부가 해법이라고 내놓는 대책들을 보면서 저는 ‘앞으로 그러한 충격적인 범죄가 또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초기 연구단계에서는 범죄자의 유전적 소질 때문에 범죄가 발생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어서 범죄를 저지른 자를 사회로부터 영구적으로 격리하거나 사형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범죄가 줄어들지 않는 사회현상을 보면서, 범죄가 범죄자의 개인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病)이 그 범죄자를 통해 나타나는 측면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영화 ‘도가니’와 같은 사건이 두 번 다시 재현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광주인화학교사건’이 성폭력의 당사자인 교장, 행정실장, 교사 등의 매우 잘못된 성관념, 부도덕성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하여 그들에 대한 중한 형사처벌에만 의존해서는 제2의 ‘광주인화학교사건’의 발생을 막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주인화학교사건’과 관련해서는 청각장애인에 대해 성폭력을 행사한 사람들의 책임을 당연히 지적해야 하겠지만, 청각장애인들이 그토록 심한 성폭력을 당할 때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던 우리들의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무관심과 청각장애인들에게 성폭력을 행사하고도 무사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 등에 대한 깊은 반성과 제도적 보완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한 제2의 ‘도가니’사건을 막을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언어(수화)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정상인과 청각장애인 사이의 간격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만큼이나 간격이 클 것입니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은 말이 통하지 않는 가족보다 오히려 수화를 할 줄 아는 봉사자들을 더 좋아한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제도적 배려가 없다면 우리는 장애인들에 대한 끔찍한 범죄의 ‘도가니’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천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