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형근 이천발전연구원장 前 경기도기획조정실장

어느덧 분가한지도 20년이 넘었다.

부모님 왈(曰),

“네가 분가한지도 오래 되었으니 네 맘대로 하고 싶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약하고 절제심도 부족하다.
경험 많은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버는 돈의 일부만 용돈으로 쓰고 나머지 돈은 나에게 맡겨라.
돈이 필요하면 사유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쓴 돈은 세세하게 밝히고 정산해야 한다”

혹시 이러한 부모가 주위에 계신다면 당신은 그 분에게 어떻게 충고하겠는가.

우리의 지방자치가 꼭 그렇다.

1995년 도지사, 시장, 군수를 우리 손으로 직접 뽑으며 지방자치가 시작되었다. 중앙정부와 업무적으로 분가를 한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왜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헌법에서 지방자치를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이를 근거로 한 법령과 지침으로 일일이 간섭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헌법 제118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방식을 법률로 정하도록 되어있다.(조직법정주의)

지방자치단체의 정원을 늘리거나 조직을 재편할 때 일일이 중앙정부의 요구사항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독립하여 분가한 자식 집의 가구배치까지 부모가 간섭하는 것과 같다. 지방조직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성이 반영될 필요가 있고, 행정혁신은 대체로 조직혁신을 통해서 시작된다. 지역실정에 맞는 행정혁신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아 놓은 것이다,

둘째, 헌법 제 117조를 보면 지방자치단체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법률우위의 원칙)

자치란 지방자치단체가 독립해서 행정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앙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처리하는 모든 사무에 대해 법령과 지침으로 상세히 정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사실상 중앙정부의 하급집행기관인 것이다. 한마디로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헌법 제59조에 의해 세금의 종목과 세율, 분배방식은 법률로 정해져 있다.

지방자치의 본질은 각자 자신의 돈으로 스스로 살림을 꾸리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근간이 될 수 있는 자체수입의 확보는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원천적으로 봉쇄되고 있다. 또한 법으로 정해진 분배방식으로 지방에서 나오는 세금의 대부분을 중앙정부가 가져간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세금의 분배는 대체로 국가가 76%, 도가 14%, 시가 10%다. 미국과 같이 국가 대 지방의 분배비율이 5:5는 되지 않더라도 6:4는 되어야 재정자치가 이루어 질 수 있다.

물론 중앙정부는 교부세라는 명목으로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가 울어야 젖 주는 것과 같다. 오죽하면 자치단체장은 ‘앵벌이 신세’라는 자조적인 푸념이 있을까. 자치단체장은 돈이 필요할 때마다 중앙을 찾아가 사유를 설명해야 하고 내려준 지침대로 쓰고 정산해야 한다.

지방자치 22년, 이제 지방분권은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월 25일 여수에서 열린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서 현재 국회가 논의 중인 개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분권이며, 자치와 분권이야 말로 “국민의 명령”이자 “시대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헌법을 개정하여 지방자치를 정상화하고 새로운 국가운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도록 세금의 분배비율을 높여야 한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국가 대개혁, 지방분권 개헌을 조속히 실현해야 한다.

국회가 당리당략을 위해 미온적일 경우 범시민운동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실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