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은경 (4세 딸아이를 키우며, YMCA아가야부모협동어린이집 준비위원)

아이들과 산책을 간 어느 날이다. 산책길에 차를 만나면 ‘꽃게’하고 외친다. 게처럼 옆으로 움직여서 차를 피하자는 의미의 약속이다. 산책을 하는 길에 개구리를 만났다. 개구리에게 인사하는 친구, 조용히 살피는 친구, 무언가를 얘기하며 키득키득 웃는 친구, 아직은 두려운 존재인지 뒤에서 지켜보는 친구 서로 다른 모습이다. 그런데 저 멀리 자동차가 보인다.

“친구들아~ 꽃게~”, 그때 한 친구가 하는 말 “개굴아 꽃게!”
난 그날 ‘개굴아 꽃게’로 인해 행복했다.

산책을 간 또 다른 어느 날이다. “선생님 이건 이름이 뭐예요?”/“이건 갈대야”/“이거 이름이 뭐예요?”/“갈대!” 두 번 같은 질문을 하더니 잠시 후 이렇게 얘기한다. “그럼 올 때 얘기 해 줄 거예요?” 난 그날 ‘갈대’로 인해 행복했다.

아이들과 학기 마무리나 일 년 마무리를 할 때 즐거웠던 일, 기억에 남는 게 뭐냐고 물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친구들의 대답은 놀이터요, 모래놀이요, 블록놀이요, 달리기요… 하고 얘기를 한다. 그 중엔 “다요” 하고 얘기하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과 일 년 동안 함께 한 놀이와 활동이 얼마나 많은데 아이들의 대답은 대부분 일상적인 것들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건 아이들이 스스로 정한 놀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사 주도의 놀이나 학습이 아닌 아이들 마음 가는 대로 아이들 욕구에 따라 하는 놀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놀이는 가르칠 수 없다. 이런 저런 책을 펴놓고 배울 수도 없다. 오로지 놀면서 느낄 수 있고, 재미있고 때론 흥분되는 느낌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놀려면 내려놔야 한다. 뭔가를 가르치려고 아이들 뒷덜미를 잡고 못 움직이게 하면서 아이들이 놀 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지금 우리 어른들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밝아지고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일에 시달리고 압박 받는 사람들은 어딘가 모르게 힘이 없어 보이고, 어둡기 마련이다. 어른도 그럴진대 하물며 어린 아이들이야 말해 무엇 하랴?

지금은 아이들에게 던졌던 즐거웠던 일,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한 질문의 의미가 없음을 안다. 하루하루의 행복이 쌓여 아이의 몸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너른 마당 준비모임이 있던 어느 날, 3세부터 8,9세 형님들까지 함께 어울려서 혹은 다른 놀이를 하지만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지어진다. 서로 다른 모양과 색, 향기를 지닌 아이들이지만 그 꽃이 어우러진 모습은 하나의 꽃밭이다.

난 오늘도 서로 다른 모양을 내고, 서로 다른 색을 보여주고, 다른 향기를 뿜어내는 아이들로 인해 행복하다. 비록 우리나라 유아교사의 환경이 열악해도 그 자리를 행복으로 물들여주는 형형색색의 아이들 꽃이 있어 오늘도 난 꽃밭에서 웃는다.